최근 IT 벤더들 사이에서는 IT가 얼마나 빠르고 극심하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기회, 도전과제 그리고 변화들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단어나 특별한 계기가 없기에, 변화에 대한 주목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류는 최근 눈에 띄게 확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무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한 권의 책에 오늘날 IT 벤더들이 통감하고 있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3년도 Harvard Business Review에 다소 직설적인 제목으로 실린 Nicholas Carr의 논문 “IT는 중요하지 않다(IT Doesn’t Matter)”는 IT의 현실을 돌아본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언뜻 모독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IT의 가치는 ‘신성한 소’(주: sacred cow. 신격화 된 비판 불가침 영역)에 가까웠던 시대에 그는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하게 됐을까?
물론 Carr의 논문은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시사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핵심 전제는 모든 사람이 강력한 기술에 접근 가능할 수 있다면, 기업에서 이를 소유하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갖기 위해 투자하는 것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IT 벤더는 물론 업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이를 주제로 많은 논쟁을 벌였고, Carr의 논문에 사용된 사례보다 속도와 규모 면에서 기술적인 진보가 얼마나 더 빠르고 거대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반박이 등장하며, 동일 선상에서 합리화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반대론자들은 IT 주도 기업들이 가져온 디지털 혁신의 힘과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수년간 지속된 IT 산업의 성장은 이러한 논쟁이 즉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기 어려운 동시에 다시 고민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Carr의 핵심 주장은 IoT와 커넥티드 시대에서 맞이하게 된 컴퓨팅의 새로운 파고 앞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의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담겨 있다. 자원을 전략으로써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편재가 아닌 희소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한 방법은? 그는 이어 “기반이 되는” 기술과 “독점적” 기술을 구별 짓는 문제에 대하여 고민한다. 인프라 기술은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열차의 경우 도시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 도입률이 높아질수록 이를 활용해서 얻을 수 있는 단일 가치는 줄어든다. 독점적 기술이란 다시 말해 “장기적으로 전략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기반이 되어 수익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인 것이다.
퍼블릭 클라우드는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강렬하게 등장했다. IT 기능의 가장 표준화 된 확산을 이끌었으며, CRM, 이메일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실상의 ‘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일부 유비쿼터스 애플리케이션이 현실화되었으며, 커스터마이징보다는 스케일이 훨씬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의 요소들과 업계의 논의가 어떻게 반영되었고, 현재 IT 벤더들의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사실이다. 다양한 인수 합병과 분리, 대형 M&A 등은 변화하는 시장에서의 기업 생존을 위한 노력의 증거이다.
또 하나 더욱 더 분명해진 것은 시장에서 주목 받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전략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올린메모리의 일약 성장과 그 뒤에 이어진 몰락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성장 기업들의 기술적 차별화에 대해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는 있지만, 시장의 변화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지속될 만한 의미 있는 독점적 차별화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형 벤더들 또한 자신을 돌아보고 Carr가 주장한 세상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우리 비즈니스의 핵심은 인프라 기업이라는 점이고, 스케일과 효율성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Carr에 따르면 “대부분의 인프라 기업들이 구축 후에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의미 있는 이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Harvard Business Review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예견한 바 있다: “Dell은 빠르게 진행된 PC 시장의 범용화(Commoditization) 물결에서 성공한 데 이어 서버, 스토리지 및 서비스 영역으로 이 전략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Michael Dell은 언제나 정보 기술의 범용화에 대한 냉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전략은 약 10여년 간, Dell이 EMC를 인수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냉철하다는 표현 그대로 Dell EMC는 DSSD 생산을 중단했다. XtremIO는 아직도 더 나아져야 하며, VCE 연합 또한 더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범용화에 대한 믿음이 EMC가 그려온 장기 전략의 결과물이 될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혹은 철저한 자기 통찰 끝에 나온 최선의 결과로 보아야 할까?
이러한 전략이 나쁜 아이디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비즈니스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파악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Dell EMC의 경우 IT 인프라스트럭처 웨어하우스가 핵심이었기에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Dell과 함께 할 경우 ODM 유형의 Huawei 혹은 HPE 등의 업체들 간에는 잔혹한 전쟁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전쟁으로 인해 상용 제품의 가격이 전체적으로 낮아질 것이며, 단기적으로 고객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멀어질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IT의 힘을 믿어야 한다면, 다소 유감스러울 뿐이다.
IBM의 경우 시장 전환을 위해 하드웨어, 특히 난공불락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메인프레임 및 관련 기술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레거시 마켓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스토리지 영역에서의 고통은 감수해야 했지만, 클라우드와 소프트웨어로의 이동은 웨어하우스 업체를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고려한 타당한 결정이었다.
Hitachi와 같은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Hitachi 전략의 핵심은 고유의 IT 차별화 전략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음(next)”을 대비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고유의 이기종 IT 자동화 및 분석, 액티브-액티브 기능을 통해 멀티 데이터센터의 생산성을 보장하며 탄력적이고 확장 가능한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통해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및 지능형 AI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는 플래시 장비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토대로 고객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고유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다. 한편 많은 부분이 “업계 표준” 기술로 이루어져 있는 IT 환경의 경우 차별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가치를 얻기는 어렵지만, 자동화 계층을 활용함으로써 강력한 API를 확보하고, 간편하게 자원을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지 생각해야 한다. Hitachi를 포함한 업계의 많은 기업들이 앞으로 IT와 IoT가 혼합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무엇을 의미할까? IoT 워크로드와 데이터 유형 및 분석에 최적화 된 IT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 사물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전송하고 분석하고 관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운영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 혹은 전통적인 IT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IoT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는 것?
아마도 이 모두가 정답이 될 것이다.
Carr의 논문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하자. 그는 한 때 반짝하고 사라진 기업들 혹은 IT 비용 절감의 웨어하우스 역할을 한 기업들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복제되어도 강력한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대단히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도 일부 있을 것이며, 이 기업들은 이러한 법칙의 예외가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IT의 성장은 Carr의 가정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클라우드의 성장을 보면 그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기 얻고자 했던 결론은 무엇일까? 대단히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이다. 복제되어도 강력한 경제적 혜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규칙에서 제외되는 그러한 애플리케이션을 뜻한다.
정보통신 기술과 운영 기술의 통합 혹은 IoT라고 통용되는 최근의 추세는 기업들이 고유의 차별화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창조 해내기 힘든 독자적인 패키지의 가치를 구축하는 것이다. Carr는 제한적인 경제적 혜택이 이러한 솔루션의 복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부족한 혜택에 대한 부분은 미래의 수익을 확보하는 것 보다는 기업의 DNA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미래에는 솔루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IT 내부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IT 외부의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경제적 혜택을 줄이는 반복성의 부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솔루션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내재적인 핵심 경쟁력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파트너십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필연적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전략적이고 심층적인 IT/OT의 통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IT 기업과 OT 기업을 잇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는 시장의 공통된 언어가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뜨는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에게는 DNA와 자원 그리고 포트폴리오가 부족하기에 이러한 영역의 주요 기업으로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IT 니치 영역에서만 애쓰다가 차별화 요인은 얻지 못한 채 IT Warehouse에 인수되어 할인된 가격으로 다시 매대에 오르게 될 뿐이다. IT 웨어하우스들은 다양한 IoT 워크로드를 지원할 수 있는 종합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으나, 산업 현장에서의 운영 기술이 부족하거나, 혹은 떠오르는 IoT 환경에 적합한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구조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즉 그들 또한 DNA를 가지고 있지 않다.
클라우드 업체들은 어떨까? 클라우드 기업들 역시 IoT 워크로드를 지원한다. 아직은 데이터스트림 혹은 분석 프로세스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대규모의 엣지 분석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이러한 플랫폼은 새로운 IT 상용화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이러한 솔루션에 요구되는 산업 시장에서의 전문성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Hitachi가 새로운 회계연도를 준비할 때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itachi 역시 “뜨는 제품”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략은 아니다. IT 제품을 제공하는 웨어하우스 업체가 아닌 엔터프라이즈 IT에 대한 One-Stop-Shop이 되기 위함이다. 쉽게 적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혜택을 보장하는 상용 솔루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솔루션을 구축하고 제공하며,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이 영역의 업체들을 지원하고 파트너십을 제공한다.
Hitachi는 부가가치 산업 설비와 모든 종류의 전자 장비 분야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ATM, MRI를 제작하며, 생체 인식 보안 장비, 카메라, 차량 내비게이션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생산하고 있다.
Hitachi는 이러한 머신에서 생성되는 데이터 스트림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의 스케일-업 인메모리 워크로드 혹은 가상화 된 스케일-아웃 환경을 제공한다. Pentaho를 통해 강력한 프레임워크를 확보한 Hitachi는 전세계 사물의 데이터를 모아 조합하고 분석하여 시각화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곧 등장하게 될 Lumada 프레임워크를 통해 확장 가능한 IoT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IoT 인사이트를 통합하고 간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것이 바로 “사물”의 힘이자, 경험이고, 통찰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Carr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주장하였듯 성공을 위한 길은 좁고, 절대로 쉽지 않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기업의 특별함은 더욱 돋보인다. 여러 가지 역량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지만, Hitachi가 바로 이러한 기업 중 하나이며, Hitachi가 그리는 NEXT를 눈 여겨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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