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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REND

'소유'에서 '임대' 개념으로


감성적인 분야인 ‘음악’이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온 역사는 꽤 오래된다. 1970년대 컴팩트 디스크(CD)를 시작으로 1과 0의 조합과 만난‘ 음원’은 음악시장의 성장과 함께 디지털과의 결합을 본격화해 왔다. 음원 기술의 발전은 바로 CD 플레이어, 워크맨, MP3 플레이어 등 음원 재생장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그리고 고음질 디지털 음원 시장이 개화 중인 지금은 직접적인 재생 디바이스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저장장치 등 다양한 IT 산업과 맞물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 발전이 곧 디지털의 역사

최근 LG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 G5’를 선보였다.‘ G5’는 세계 최초로 디바이스(Device) 간 결합을 지원하는‘ 모듈 방식(Modular Type)’을 적용한 것이다. 첫 번째 모듈 기능으로는 카메라 사용 경험을 강화하는‘ 캠 플러스’와 고음질의 음원 감상을 지원하는‘ 하이파이 플러스(Hi-Fi Plus with B&O PLAY)’를 들 수 있다.

스마트폰 업체가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의 차별화 포인트로 처음 내세운 것이‘ 카메라’와‘ 오디오’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오디오 성능 강화는 최근 디바이스 업체는 물론 스트리밍 업체, 음반업체 모두 주목하는 분야로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음악시장의 패러다임을 형성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음악시장은 아날로그 레코드(Vinyl LP)에서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컴팩트 디지털 미디어(CD)를 거쳐‘ MP3’로 대변되는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발전해 왔다. 음원 재생매체의 발전 과정을 보면 우선 크기의 소형화가 주목된다. 12인치(30.48cm) LP판에서 가로 10cm, 세로 6.3cm 크기의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지름 12cm의 CD에 이르기까지 음원을 저장하는 매체의 크기는 점점 소형화됐다.

이는 음악 재생을 위해선 스피커와 앰프 등 물리적 공간이 필요했던 것에서 소니(Sony)의‘ 워크맨’ 발명 이후 공간의 제약이 해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카세트 테이프 발명 이후 나온 CD의 경우 처음부터 집 밖에서의 사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크기가 카세트 테이프의 대각선 길이와 비슷한 12cm로 정해지면서 턴테이블과 같은 덩치 큰 재생기기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음원의 디지털화 시초, CD

음원 매체의 발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방식의 LP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세계의 음반 및 오디오 업체들은 표준 규격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방식의 디지털 오디오 규격을 심의했는데, 이 중 소니와 필립스가 개발한 CD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표준 CD의 지름은 12cm로, 최대 74분의 비압축 오디오 신호를 담을 수 있었다. 74분이 용량의 기준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CD가 개발되면서 처음으로 음원의 디지털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디지털 음원은 아날로그 신호인 소리를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것으로 CD에서는 16bit, 44.1kHz의 규격으로 음원이 기록됐다. 지금은 녹음 과정에서 디지털 녹음이 이뤄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필요없지만, 예전에는 음반을 녹음하고 이를 CD로 발매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기 위해 샘플링 단계를 거쳐야 했다. 샘플링은 소리를 분석해 디지털 세계의 언어인‘ 1’과‘ 0’을 어떻게 배열할지 표본화하는 것으로 16bit는 6만 5,536단계의 샘플링을 거치게 된다. 44.1kHz의 경우 인간의 가청대역, 즉 인간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역인 최고 주파수가 대략 20kHz인 것을 감안해 20kHz의 2배 이상의 신호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화한 CD는 LP에 비해 관리의 편의성과 합리적인 음질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테이프에 비해 크기가 커서 휴대성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한 ‘원죄’ 탓에 음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연적인(아날로그) 음악을 1과 0으로 분해하면서 음악 본연이 갖는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MP3, 디지털 음원의 대중화를 이끌다

그러나 MP3가 개발되면서 디지털 음원의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MP3가 대중화되자 휴대하며 MP3를 감상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와 같은 기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물론 디지털 음원 형식으로는 MP3외에도 WAV, RM 등이 있다. 하지만 MP3는 CD 음질을 유지하면서도 데이터를 1/10 크기로 줄일 수 있어 시장에서 호응이 높았다. 특히 MP3는 음악CD보다 다소 음질이 떨어짐에도 음반시장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필요한 것들을 삭제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을 남기는 기법인 ‘손실 압축’[각주:1]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편의성이 높다는 이유로 LP나 CD와의 음질 차이에 대한 논란을 가볍게 제쳐버렸다.


하지만 1990년대 MP3가 처음 소개된 이후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디지털 음원 기술은 새롭게 발전해왔다. 이제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 영역의 소리를 삭제해 파일 용량을 줄이는 MP3를 벗어나 파일만 압축해 용량을 줄이는 FLAC(Free Lossless Audio Codec)부터 24bit 192kHz 샘플링은 물론 그 이상의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DSD(Direct Stream Digital)로 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음원 자체의 기술 발전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IT 인프라의 발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MP3 방식이 각광을 받은 것도 4~10MB 사이의 적은 용량으로도 한 곡의 음악을 재생하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의 저장용량이 128GB 이상 훌쩍 뛰어넘는다. 노래 한 곡에 할당할 수 있는 저장용량의 최대치가 변한 것이다. 이는 디지털 음원의 기술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저장용량의 한계 때문에 적용하지 못했던 다양한 기술을 접목할 수 있게 됐다. 최신 DSD 파일의 경우 CD 앨범 하나가 4GB의 용량을 차지하기도 한다.




음원 소비 Vs. 음악 감상

IT 인프라의 발전은 음악 감상의 패턴도 변화시켰다.‘ 냅스터’와‘ 소리바다’와 같이 음반시장의 성장과 적대적(?) 관계였던 IT 혁신 기업들은 MP3를 ‘공유’와‘ 소유’의 개념으로 봤다. 당시만 하더라도 MP3는 P2P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받고 이를 소유하는 구조였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LP나 CD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하드디스크에 MP3 파일을 꽉꽉 채우는 데 집중했다. 이 때만해도 MP3를 소장하는 데 가치를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음악 감상의 패턴을 변화시켰다. 이른바‘ 음악 감상’의 시대에서‘ 음원 소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는 음원 시장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면서 가속화됐다. MP3와 같은 저용량 디지털 음원은 네트워크를 통한 송출이 가능할 만큼 현재의 인터넷 네트워크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MP3 플레이어로 듣는 양질의 MP3와 마찬가지로 굳이 모바일 기기나 PC에 저장하지 않아도 디지털 음원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디지털 음원을 놓고 갈등을 벌이던 음반회사와 ICT 회사들이 어느 정도 갈등을 해소하면서 시장의 파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음반회사들이 디지털 음원을 적대적으로 보던 시각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게 되자 이는 스트리밍 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MP3 파일은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는 누가 언제 얼마나 음악을 들었는지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가 생성된다. 따라서 음반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한 저작권 수입 등 수익을 체계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였던 MP3에서 스트리밍을 통한 유료화 모델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음반회사들은 디지털 음원 시장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심해왔다. 마찬가지로 ICT 기업 역시 적은 이용료를 음반회사들과 분배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대두된 것이 바로 24bit 192kHz 해상도, 혹은 그 이상의 해상도인 DSD 등 고해상도 음원의 출현이다. 고음질 음원은 다양한 기술적 요건이 있지만 간단하게 말해 LP 수준의 음질, 혹은 레코딩 녹음 당시의 원음 수준의 음질을 의미한다.



새로운 수익모델이 된 고음질 음원

디지털 음원은 태생적으로 1과 0의 조합으로 이뤄지면서 아날로그 음악을 재조합하게 된다. 고음질 음원은 이 과정에서 손실되기 마련인 정보를 최대한 줄이고 녹음 당시의 원음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한 음원을 의미한다.

손실 압축된 디지털 음원을 스트리밍 서비스하던 음반사들과 ICT 업체들은 고음질 음원을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국내에선 이미 KT‘ 지니’와‘ 벅스뮤직’ 같은 스트리밍 업체들이 FLAC과 같은 고음질 음원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해외에서도 타이달(Tidal),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업체들이 고음질 음원을 제공하면서 과금 체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기술 발전은 음원 소비의 시대에서 다시 음악 감상의 시대로 회귀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편의성을 위해서 희생됐던 음질이 기술 발전으로 인해 LP를 위협할 만한 수준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IT는 이제 소유의 개념에서 빌려 쓰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이 직접 시스템 통합(SI) 업체를 통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리를 하던 시대에서 현재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사용한 만큼 지불하고 관리까지 받는 시대가 왔다.

음악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LP와 카세트 테이프, CD 등은 개인이 소장하는 가치의 개념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스트리밍 시장의 발전으로 음원은‘ 소장’보다는 빌려서 듣는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근간에 IT 기술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 처리할 수 있는 스토리지, 네트워크의 발전과 이를 재생할 수 있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의 발달은 전통 산업 중 하나였던 음반 시장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 1) 손실 압축 : 파일 크기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를 압축해 자료를 받는 곳에 압축으로 풀어서 원래의 것과 다르게 보여주는 것으로, 오디오, 비디오, 스틸 이미지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압축하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한편, 무손실 압축은 텍스트로 된 파일, 그리고 은행 기록과 같은 데이터 파일을 압축하는 데 사용된다. [본문으로]